[지극히 味적인 시장] 서귀포 오일장
생선, 채소, 과일, 건어물 등 다양한 상품을 가지고 오일장에 모이는 상인은 대략 600명. 오롯이 제주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에 따라 상품이 바뀐다. 대형 할인점은 출입구가 한두 개지만 오일장은 사방이 출입구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넓은 출입구가 메인 스트리트다. 한라산을 등지고 장터를 잡은 서귀포 오일장. 날 좋은 날은 백록담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과일전 위쪽으로는 식당가가 있는데 장이 서지 않더라도 식당 문을 연다. 대부분 고기국수와 순댓국밥 위주인데 제주시나 서귀포시의 이름난 식당 못지않게 맛도 괜찮고 양도 푸짐하다. 줄 설 필요도 없어 더 좋다. 하나 있는 중국집에서는 고기국수 대신 고기짬뽕을 낸다. 고기국수를 중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이다. 맑은 육수 대신 얼큰한 짬뽕 국물로 나와 매력적인 맛이다.
빙빙 만다고 해서 빙떡. 강원도에서 총떡, 병떡이라 부르는 메밀전병의 제주도 버전이다. 제주는 국내 제1의 메밀 생산지다. 메밀은 강원도가 유명하지만, 생산량은 제주가 1위, 그다음이 경북이다. 강원도는 세 번째다. <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그 무렵에 지금처럼 제주도를 오갈 수 있었다면 아마도 제주가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제주에선 메밀을 많이 생산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메밀꽃 장면도 제주에서 찍었을 정도로 한여름 제주는 메밀꽃 구경하기가 쉽다. 메밀 생산량은 많아도 메밀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이다. 접짝뼈국(돼지 뼈와 살코기를 푹 고아 낸 국)이나 몸국에 넣는 정도이고, 다른 재료에 묻혀 메밀 맛을 즐기기는 어렵다.
그나마 빙떡이 제주 메밀 맛을 즐길 수 음식이다. 깎은 무로 기름을 찍어 살짝 두른 철판에 반죽을 부쳐내고는 참기름으로 무친 무채를 넣고 말기만 하면 끝난다. 만드는 법은 단순하지만 2월 제주의 맛을 품고 있다. 2월은 달디단 월동 무 수확이 한창일 때다. 단맛이 잔뜩 든 무채에, 참기름 그리고 구수한 메밀 향이 더해져 맛있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과 달리 제주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빙떡 하나에 1000원, 세 개에 2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멀리 소줏고리가 보였다. 소주를 내리나 싶어 다가가니 소주는 아니었다. 1993년부터 한경읍 소수리에서 허브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가 즉석에서 에센스를 추출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 추출하고 오일과 에센스를 분리하는 깔때기에 넣어 분리한다. 오일은 모아서 비누를 만들고, 에센스는 스프레이통에 희석하지 않고 원액 그대로 담는다. 한 병에 3000원으로 선물용으로도 부담 없다. 다른 시장에는 없는 향기다.
모슬포 방어 낚시는 야행성인 오징어를 잡는 한밤중부터 시작한다. 밤에 잡은 오징어가 방어를 유혹하는 향기로운 미끼다. 초겨울까지는 자리돔을 잡아 미끼로 쓰지만 한겨울엔 오징어가 대신한다. 오징어를 잡아 항구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동틀 무렵 방어잡이에 나선다. 낚싯바늘에 오징어를 통으로 꿰어 방어를 잡는다. 그물로 잡는 동해와는 다른 모슬포 방식이다. 한 마리, 한 마리씩 잡는 방식이라 회를 떠도 다른 곳보다 깔끔하다.
입춘이 지나면 방어 인기는 12월과 달리 시나브로 잦아든다. 입춘이라는 글자가 주는 봄에 대한 기대감이 방어철이 끝났다는 암시라도 되는 것처럼 찾는 이가 적어진다. 입춘은 육지에 봄이 온다는 의미지만 바다는 비로소 겨울에 접어든다. 바다의 한겨울은 음력으로 2월, 양력으로 치면 3월이다. 3월의 바다는 영등철(음력 2월)로 육지로 치자면 대한의 추위라 할 수 있다. 수온이 가장 낮게 내려가는 시기다. 3월이 지나면서 비로소 방어철이 끝나고 보리 순이 크기 시작한다. 더불어 부시리의 맛이 좋아진다. 2월 중순, 여전히 맛있는 방어가 많이 잡힌다. 모슬포 축양장을 찾은 바로 전날도 1000여마리가 잡혔다고 한다.
찾는 이가 적어지고 잡히는 양은 비슷하니 가격이 한창 때보다 저렴하다. 모임이 많아 가장 비싼 12월 경매가가 ㎏당 3만원 전후였다면 지금은 1만5000원 내외다. 저렴하게 그리고 푸짐하게 방어회를 즐길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부터 3월 중순까지다.
‘청년올레식당’은 제주에 26개의 길을 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청년들의 창업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만든 식당이다. 석 달에 한 번 멤버가 바뀌고, 매달 메뉴가 바뀌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2월 현재 3기 4명의 젊은 셰프가 창업의 올레길을 걷고 있다. 개성 있는 메뉴 중에서 한 가지를 골랐다. 제주에서 많이 나는 갈치 한 마리를 통으로 내면서도 젊은 감각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름하여 ‘갈치덮밥’. 밥에 갈치 한 마리 맛을 잘 녹여내고도 한 마리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양새다. 발라낸 살을 생선가스처럼 튀겨 내고, 남은 뼈는 똬리를 틀어 튀겼다. 간장을 기본으로 매콤한(순한 맛도 선택 가능) 소스로 양념해 밥 위에 얹고 튀김이 올라간다. 타르타르소스와 소금이 곁들여 나온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튀김 요리의 재료가 갈치이니 맛을 설명하자면 입만 아프다. 튀긴 갈치 뼈의 고소함은 덤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포구는 식당 두 개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경매장도 마을 규모에 맞게 아담하지만 제주도에서도 이름난 옥돔 산지인지라 포구 앞에 있는 옥돔 표석이 오가는 이를 반긴다. 경매에 나오는 생선 중 백조기나 붕장어도 있지만 주인공은 옥돔. 아직은 많은 양이 나오지 않아 한 마리 경매가가 2만~3만원이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당일 잡은 것을 구이로 내는데 경매가가 높다 보니 식당에서 파는 가격도 높다. 여럿이 갔으면 한 마리 맛볼 요량으로 주문하겠지만 혼자 다니는 처지라 대신 회덮밥을 주문했다. 사실 옥돔보다는 회덮밥이 더 끌려 찾아간 곳이다.
회덮밥의 재료는 매일 바뀐다. 어촌계에서 잡은 것만 올린다고 하는데, 식당을 찾은 날은 운 좋게 9㎏짜리 부시리가 덮밥의 재료였다. 철은 아직 이르지만 대부시리의 차진 식감과 비빔 재료인 양배추의 제철 단맛이 어우러져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올레 4코스 길 중간이라 올레꾼들도 자주 찾는 집이다. 회덮밥 재료로 무엇이 올라가도 회덮밥 한 그릇에 1만2000원이다. 태흥리 어촌계식당(064-764-4487). 수요일 휴무.
무늬오징어는 오징어계의 절대 ‘갑’이다. 크기로도 맛으로도 비교를 불허한다. 갑오징어가 맛있다지만 뼈대만 튼실할 뿐 무늬오징어와 비교하면 ‘을’이 된다. 무늬오징어는 가을부터 초봄까지 난다. 동해안과 남해안, 일부 서해안에서도 나지만 잡히는 양이 적어 현지에서 소비된다. 즉 현지에서 나는 철에 잘 찾아야 겨우 맛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 제주 출장을 가면 간혹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들러 무늬오징어를 산다. 시장에서 회를 떠주는 곳 중 한 곳에서만 판다. 회를 떠서 숙소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오징어 신경만 끓어 달라고 해서 포장을 한다. 회보다는 데침이 무늬오징어 맛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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