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적인 시장 _ 군산
11월 말, 군산에 내려가는 길을 비와 함께했다. 계절의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고 있는 가을을 한 방에 보내는 겨울비였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군산 대야면의 장터는 이미 흥정이 한창이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 대야장이다. 오일장의 흥망성쇠는 우시장이 좌우한다. 큰돈이 오가는 우시장이 서야 오일장에 사람과 돈이 흐른다. 우시장이 사라진 전국 오일장 대부분은 돈과 사람이 말라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대야장은 우시장이 사라졌음에도 군산과 김제의 경계 부근이라는 위치 덕분에 볼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따듯한 국물도 간절히 생각나고 출출한 속도 채울 겸 국숫집부터 찾았다. 1·6일마다 서는 대야장이 열릴 때만 국수를 파는 곳이다. 비빔국수, 멸치국수 두 가지만 있다. 유부를 고명으로 올린 국수에 쪽파를 잔뜩 넣은 간장으로 간을 해 한 그릇 후루룩 먹었다. 멸치국물, 국수, 김치 세 가지의 궁합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멸치국수다. 대야장의 국숫집은 거기에 쪽파 간장이 중심을 잡아주기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군산 시내를 다니다 보면 ‘시간’이라는 단어와 자주 만난다. 군산 여행 테마가 ‘시간여행마을’이다. 항구 주변의 박물관을 포함한 옛 건물을 둘러보는 것을 의미한다. 24년차 식품 MD에게 군산에서의 시간은 다른 의미다. 11월 말의 군산은 겨울 제철 먹거리 여행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지점이다. 군산을 대표하는 많은 먹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은 박대가 아닐까 싶다. 박대는 사철 나는 생선이지만 근래에는 생산량이 적어 수입으로 수요에 대처하기도 한다. 항구와 어시장 주변으로 찬 바람이 불면 박대에서 잡내가 나지 않고 꾸덕꾸덕 잘 마른다. 기온이 높으면 짠맛이 세고 잡내가 많이 난다. 박대 먹기 딱 좋은 시간이 겨울, 바로 지금이다. 시간은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신선한 생선이 겉절이라면 반건조 생선은 묵은지 같은 맛이다.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맛을 쟁여놨기 때문이다. 군산 어시장에서 파는 국내산 박대는 크기가 작다. 반면에 외국산은 몸통이 커서 먹을 만한 살이 많다. 건어물 살 때 굳이 외국산과 국산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는 외국산이 나은 경우가 많다.
반건조한 졸복(현지에서는 쫄복), 제철 맞은 미나리, 된장과 아욱 이렇게 네 가지가 어우러져 내는 맛은 누가 먹어도 첫 숟가락에 저절로 ‘엄지 척’이다. 4년 전 눈 내리던 겨울에 맛본 ‘쫄복국’이 그리워 다시 찾은 식당이 있다. 졸복은 가장 커야 30㎝ 전후인 참복과의 작은 생선이다. 서해, 남해, 동해 모든 바다에서 잡힌다. 경남 통영에서는 주로 생물로 맑은 탕을 끓이지만 군산에선 반건조한 졸복으로 끓인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맛이다. 탕을 주문하면 졸복 튀김 몇 마리를 맛보기로 내준다. 와사비(고추냉이) 간장보다 초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운전자만 아니었다면, 맥주 한 병이 바로 사라질 맛이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군산에서 혼자 밥 먹기가 쉽지 않다. 생선구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국밥까지도 1인분을 안 파는 곳이 많다. 다행히 이 식당은 흔쾌히 1인분을 판다. 똘이네(063-443-1784)
한겨울은 냉면 먹기 좋은 계절이다. 맛을 떠나 먹는 사람이 줄어들기에 호젓하게 먹을 수 있어 우선 좋다. 가을에 수확한 메밀도 향과 맛을 그대로 품고 있어 맛을 더한다. 군산에 60년 넘은 냉면집이 있다. 닭, 돼지, 소뼈로 육수를 내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 서울의 맑은 평양식 냉면과 다른 이 집만의 색이 있다. 잘게 찢은 닭고기, 그 밑에 돼지고기 수육, 채를 썬 오이 등이 수북이 올라간 고명도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모양새다. 면과 함께 여러 고명을 씹는 맛에 독특한 매력이 있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같이 나오는 무김치가 조금 단 것 빼고는 만족스러운 맛이다. 서울식 평양냉면과 형태도 다르거니와 가격도 차이가 난다. 물냉면 한 그릇에 불과 7000원이다. 뽀빠이냉면(063-446-1785)
지금부터 슬슬 맛이 드는 반지. 겨울이나 봄에 군산에 간다면 무조건 반지로 한 끼 정도 먹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군산에서만 반지가 제 이름으로 불린다. 다른 지역은 밴댕이로 부른다. 원래 밴댕이는 디포리라 불리는 생선의 이름이다. 수도권에서 반지를 지역 사투리인 밴댕이로 불렀다. 강화나 인천의 밴댕이가 유명해지면서 반지는 자기 이름을 빼앗겼다. 봄에 밴댕이를 많이들 찾는데 한겨울 밴댕이도 기름진 살이 부드러워 맛이 좋다. 회정식도 좋지만 새콤달콤한 무침과 흰쌀밥의 궁합은 최고다. 째보선창으로 불리는 죽성포구 일대에 유명한 집들이 몰려 있다. 일찍 영업을 끝내는 경우가 많으니 가기 전에 영업시간 확인은 필수다. 필자도 방심하고 오후 7시 조금 넘어 갔다가 낭패 볼 뻔했다. 돌풍식당(063-446-4059)
홍윤베이커리는 우리밀과 쌀, 보리로 빵을 만드는 곳이다. 보통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 ‘안전’을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홍윤은 조금 다르다. 맛은 내세워도 안전이니 건강이니 하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강과 만경강 사이의 군산은 좋은 쌀이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특히 군산 신동진은 쌀로 정평이 나 있다. 쌀뿐만 아니라 이모작으로 하는 보리도 군산의 특산물 중 하나다. 보리로 만든 빵을 사러 갔다가 커피와 쌀카스텔라 궁합을 맛보고, 달곰한 딸기요구르트와 매콤한 짬뽕빵에 반하고 나왔다. 특히 짬뽕빵은 불맛 나게 볶은 채소와 고기가 실하게 들어 있다. 커피나 물과 먹으면 제맛을 못 느낀다. 우유나 요구르트와 함께했을 때 비로소 제맛이 난다. 나올 때에야 유리창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홍윤베이커리 빵을 드시면 농민도 함께 웃습니다.’ 홍윤베이커리(063-461-0445)
군산은 지난 20년 동안 30~40번 갔던 곳이다. 이번 출장은 전과 달리 넉넉함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1인분은 안 파는 메뉴가 너무 많은 것도 있지만, 일단 성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태워버린 박대가 나오고, 제철 생선회와 군산 보리밥이 나온다는 회덮밥에는 해동도 안된 참치가 나왔다. 한 상 가득 차리는 것이 전라도의 밥상이라 생각들 한다. 맞지만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심이 있어야 맛이 난다. 몇 첩의 숫자를 보여주기 위한 한상차림은 뭐가 됐든 맛없다. 그나마 저녁으로 먹은 반지회와 따듯한 김국이 군산에서 느낀 헛헛함을 채워줬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따듯한 국물도 간절히 생각나고 출출한 속도 채울 겸 국숫집부터 찾았다. 1·6일마다 서는 대야장이 열릴 때만 국수를 파는 곳이다. 비빔국수, 멸치국수 두 가지만 있다. 유부를 고명으로 올린 국수에 쪽파를 잔뜩 넣은 간장으로 간을 해 한 그릇 후루룩 먹었다. 멸치국물, 국수, 김치 세 가지의 궁합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멸치국수다. 대야장의 국숫집은 거기에 쪽파 간장이 중심을 잡아주기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돼지감자차는 구수하다. 그러면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매력이다. |
반건조한 졸복(현지에서는 쫄복), 제철 맞은 미나리, 된장과 아욱 이렇게 네 가지가 어우러져 내는 맛은 누가 먹어도 첫 숟가락에 저절로 ‘엄지 척’이다. 4년 전 눈 내리던 겨울에 맛본 ‘쫄복국’이 그리워 다시 찾은 식당이 있다. 졸복은 가장 커야 30㎝ 전후인 참복과의 작은 생선이다. 서해, 남해, 동해 모든 바다에서 잡힌다. 경남 통영에서는 주로 생물로 맑은 탕을 끓이지만 군산에선 반건조한 졸복으로 끓인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맛이다. 탕을 주문하면 졸복 튀김 몇 마리를 맛보기로 내준다. 와사비(고추냉이) 간장보다 초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운전자만 아니었다면, 맥주 한 병이 바로 사라질 맛이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군산에서 혼자 밥 먹기가 쉽지 않다. 생선구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국밥까지도 1인분을 안 파는 곳이 많다. 다행히 이 식당은 흔쾌히 1인분을 판다. 똘이네(063-443-1784)
군산식 평양냉면이다. 굳이 서울식 평양냉면을 잣대로 삼을 필요가 없다. |
한겨울은 냉면 먹기 좋은 계절이다. 맛을 떠나 먹는 사람이 줄어들기에 호젓하게 먹을 수 있어 우선 좋다. 가을에 수확한 메밀도 향과 맛을 그대로 품고 있어 맛을 더한다. 군산에 60년 넘은 냉면집이 있다. 닭, 돼지, 소뼈로 육수를 내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 서울의 맑은 평양식 냉면과 다른 이 집만의 색이 있다. 잘게 찢은 닭고기, 그 밑에 돼지고기 수육, 채를 썬 오이 등이 수북이 올라간 고명도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모양새다. 면과 함께 여러 고명을 씹는 맛에 독특한 매력이 있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같이 나오는 무김치가 조금 단 것 빼고는 만족스러운 맛이다. 서울식 평양냉면과 형태도 다르거니와 가격도 차이가 난다. 물냉면 한 그릇에 불과 7000원이다. 뽀빠이냉면(063-446-1785)
지금부터 슬슬 맛이 드는 반지. 겨울이나 봄에 군산에 간다면 무조건 반지로 한 끼 정도 먹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군산에서만 반지가 제 이름으로 불린다. 다른 지역은 밴댕이로 부른다. 원래 밴댕이는 디포리라 불리는 생선의 이름이다. 수도권에서 반지를 지역 사투리인 밴댕이로 불렀다. 강화나 인천의 밴댕이가 유명해지면서 반지는 자기 이름을 빼앗겼다. 봄에 밴댕이를 많이들 찾는데 한겨울 밴댕이도 기름진 살이 부드러워 맛이 좋다. 회정식도 좋지만 새콤달콤한 무침과 흰쌀밥의 궁합은 최고다. 째보선창으로 불리는 죽성포구 일대에 유명한 집들이 몰려 있다. 일찍 영업을 끝내는 경우가 많으니 가기 전에 영업시간 확인은 필수다. 필자도 방심하고 오후 7시 조금 넘어 갔다가 낭패 볼 뻔했다. 돌풍식당(063-446-4059)
홍윤베이커리는 우리밀과 쌀, 보리로 빵을 만드는 곳이다. 보통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 ‘안전’을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홍윤은 조금 다르다. 맛은 내세워도 안전이니 건강이니 하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강과 만경강 사이의 군산은 좋은 쌀이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특히 군산 신동진은 쌀로 정평이 나 있다. 쌀뿐만 아니라 이모작으로 하는 보리도 군산의 특산물 중 하나다. 보리로 만든 빵을 사러 갔다가 커피와 쌀카스텔라 궁합을 맛보고, 달곰한 딸기요구르트와 매콤한 짬뽕빵에 반하고 나왔다. 특히 짬뽕빵은 불맛 나게 볶은 채소와 고기가 실하게 들어 있다. 커피나 물과 먹으면 제맛을 못 느낀다. 우유나 요구르트와 함께했을 때 비로소 제맛이 난다. 나올 때에야 유리창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홍윤베이커리 빵을 드시면 농민도 함께 웃습니다.’ 홍윤베이커리(063-461-0445)
군산은 지난 20년 동안 30~40번 갔던 곳이다. 이번 출장은 전과 달리 넉넉함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1인분은 안 파는 메뉴가 너무 많은 것도 있지만, 일단 성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태워버린 박대가 나오고, 제철 생선회와 군산 보리밥이 나온다는 회덮밥에는 해동도 안된 참치가 나왔다. 한 상 가득 차리는 것이 전라도의 밥상이라 생각들 한다. 맞지만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심이 있어야 맛이 난다. 몇 첩의 숫자를 보여주기 위한 한상차림은 뭐가 됐든 맛없다. 그나마 저녁으로 먹은 반지회와 따듯한 김국이 군산에서 느낀 헛헛함을 채워줬다.
잘 봤습니다.
답글삭제여행 다녀온 기분이네요
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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