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오일장

입춘이 지난 남녘은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목까지 채웠던 지퍼를 내렸고, 결국에는 외투를 뒷좌석으로 던져버렸다. 완도행이다. 어느새 완도는 푸르름이다. 키재기 하듯 솟아오르는 양파와 마늘 대, 바다에서 갓 건진 해초류가 완도 오일장 좌판을 푸르름으로 채우고 있다.
완도 오일장은 뒷자리가 5와 0으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읍내에 상설시장이 있어도 여전히 오일장에 사람이 몰린다. 해초류 구경하는 남다른 재미가 완도 오일장의 매력이다. 이름도 낯선 너푸. 된장국을 끓이면 너푸만 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맛난 해초다. 너푸, 넓태라고도 부르지만 실제 이름은 넓패다. 미역과 같은 갈조식물로 겨울과 봄 사이에 잠시 난다. 따로 양식하지 않아 완도, 진도 등 현지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근래 들어 인기가 높아진 감태, 김처럼 말려서 먹는 것이 알려진 방법이지만 현지는 현지만의 먹는 방법이 있다. 바로 김치다. 양념으로 풋고추, 다진 마늘, 생강 그리고 잘 숙성한 멸치액젓에 고춧가루를 개어서 버무리면 김치 완성이다. 소금물에 이틀 정도 넣고 푸른색이 노랗게 변할 때 먹는 김치다. 해초향이 더해진 새콤함이 밥을 부르는 마법을 부린다. 감태라고 흔히 부르지만 감태는 갈조식물이다. 우리가 먹는 푸른빛 감태는 파래의 일종인 ‘가시파래’다. 가시파래에 이름을 뺏긴 진짜 감태는 이제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완도는 전복’이라 해도 될 만큼 완도는 전복 생산량이 많다. 전국 각지의 전복 생산량을 다 합쳐도 완도 생산량의 4분의 1이다. 전국 생산량의 80%를 완도에서 생산하기에 섬과 섬 사이,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면 어김없이 전복 양식장이 들어서 있다. 전복 양식장 옆에 다시마나 미역 양식장이 같이 있어 바로 옆에서 수확해 전복 먹이로 준다. 
전복은 육상에서 키운 종패를 사와 3년을 키운다. 3년이 지나면 수확하는데 같은 날에 넣은 종패도 성장은 제각각이다. 어떤 것들은 1㎏에 5~6미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횟집이나 선물용으로 팔려가고, 오백원짜리 동전만 한 꼬마 전복은 칼국수나 라면용으로 팔린다. 크기와 용도에 따라 전복을 골라도 3년 키운 것은 같다. 사시사철, 어느 곳에서나 전복을 맛볼 수 있다. 사실 제주 여행에서 먹는 전복도 대부분 완도산이다. 제주에서는 양식을 거의 하지도 않거니와 제주에서 자생하는 전복은 양식 전복과 품종 자체가 다르다. 제주 해녀들이 채취하는 것은 말전복, 시볼트전복, 까막전복이다. 세 품종 모두 양식으로 키우는 참전복과는 다르다.

전국 생산량 80%인 완도 전복

산지서만 느끼는 고유의 단맛

독보적인 ‘쏨팽이탕’ 꼭 먹어야


전복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지만 완도에서 먹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신선함 때문이다. 시장에도 가끔 싱싱한 전복이 있지만 산지에서 바로 꺼낸 전복에는 고유의 단맛이 있다. 산지 경매, 도매시장, 소매를 거치는 동안 전복은 먹이 활동을 못한다. 먹지 못하고 수조 속에서 생명만 유지한 채로 버틴다. 호흡 등 생명 유지를 위해 가지고 있던 포도당이나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기에 산지만큼 단맛이 나지 않는다. 산지에서도 나름의 철이 있다. 한창 미역과 다시마가 나는 봄철의 전복은 1년 중 가장 맛있다. 맛이 든 전복을 회로 먹는 것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그래도 열기가 더해진 것이 한층 맛이 깊다. 깨끗이 손질한 뒤 맥주나 저렴한 화이트 와인을 넣어 찐 전복은 회에선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이 있다. 질 좋고 풍부한 먹이는 전복의 단맛을 연중 어느 때보다 끌어올린다. 환절기 보양식으로 봄철 전복이 좋거니와 양념간장에 숙성한 전복장도 입맛 회복에 특효다.


시원함의 끝판왕 ‘쏨팽이탕’

전복의 고장 완도지만 전복보다 꼭 먹어야 할 음식이 바로 쏨팽이탕이다. 꾸덕꾸덕 말린 것은 맑은 탕으로, 생물은 매운탕으로 먹는 완도 쏨팽이(완도 사투리)는 표준명으로는 붉은쏨뱅이다. 우럭(조피볼락)과 사촌지간이지만 탕을 끓이면 맛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자연산 우럭으로 끓인다 해도 쏨팽이의 시원함은 반의 반도 못 따라갈 만큼 그 맛이 독보적이다. 며칠 말린 쏨팽이에 생강, 마늘을 넣고 한소끔만 끓여도 시원하고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좀 과장해서 보름 전 마신 술도 해장시킬 만한 위력이다. 꼬들꼬들한 살맛은 덤이다.


생물은 매운탕으로 내는데 반건조한 것보다 국물의 시원함이나 깊이가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깨끗한 살맛이 그런 아쉬움을 금세 잊게 한다. 흰살 생선이 낼 수 있는 최상의 국물과 살맛이다. 전복은 해장국만 주문해도 먹을 수 있기에 완도에 간다면 꼭 찾아서 먹어야 할 음식이다. 미소식당 (061)553-6868.
해장국은 서울이든 어디든, 그 재료가 돼지든 소든 상관없이 대략 6000~8000원 사이다. 완도에서 파는 해장국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게 8000원이다. 가격은 같아도 다름이 있다. 전복이, 그것도 실한 전복 두 마리가 해장국 그릇에 담겨 나오니 전복해장국이다. 청산도로 출발하기 전 여객선터미널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전복해장국을 주문했다. 짬뽕이나 라면에 들어가는 오백원 동전만 한 것이 나오겠다 싶었지만 웬걸? 실한 전복 두 마리가 들어 있다. 전복도 전복이지만 황태, 콩나물에서 나는 감칠맛에 전복과 가시리(해초의 일종)의 시원함이 만나니 국물 한 모금에 속이, 말 그대로 싸악 풀렸다. 전라도 식당의 반찬 맛은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특히 해안가의 식당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해장국에 딸려나온 반찬 중에서 유독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이 앞서 이야기한 감태김치다. 해장국이라는 게 뜨듯한 국물에 밥 말아먹는 맛이지만 감태김치 맛에 반해 반 공기만 말고 반은 감태김치와 먹었다. 새콤한 맛에 바다향 물씬 나는 게 밥도둑으로 치자면 전과 10범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상화식당 (061)554-4484. 
 전복만큼 유명한 것이 완도 김이다. 김은 씻고 말린 것을 구워서 먹는 것이 상식. 김 주산지에 때맞춰 가야 먹을 수 있는 것이 김국이다. 끓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에 된장 풀고, 잔새우 넣고 끓이다가 말리지 않은 물김을 넣으면 끝이다. 역시 전복의 고장답게 뚝배기 바닥에 전복 두 마리가 들어 있지만 꽃향기보다 향긋한 김향기에 전복은 바로 잊힌다.
새우 가루를 듬뿍 넣은 탓에 겉보기엔 언뜻 지저분해 보이지만 국물은 깔끔하다. 찬으로 나온 꼴뚜기젓을 김국에 더하니 몇 배의 맛이 났다. 바다가 주는 최상의 맛은 희귀한 것이 아니라 제철에 숙성을 더한 맛이 아닐까 싶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는 배를 타고 50분 정도 걸린다. 완도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8시30분 배를 타면 9시20분 즈음 청산도에 도착한다. 나오는 배는 오후 1시, 3시, 5시 세 편이 있다. 시간 여유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청산항에 도착해 영화 <서편제> 배경이었던 돌담길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둘레길을 좀 더 걷다가 항으로 돌아와 식사하고 오후 1시에 나오는 것도 재미있는 여행이 될 듯싶다. 나오는 길에 수협 판매장에 잠시 들르면 일명 ‘곱창돌김’이라 불리는 맛있는 김을 살 수 있다. 김 포자를 뿌리는 것에 따라 수확하는 김이 달라진다. 곱창돌김은 돌김의 일종인 잇바디돌김의 포자를 뿌려서 재배한 김이다. 김이 자라면서 곱창처럼 꾸불꾸불해진다 해서 곱창돌김이라 한다. 다른 김보다 향이 진하고 단맛이 돈다. 기름과 소금으로 양념해 굽는 것보다는 불에 살짝 구워서 따듯한 밥과 먹을 때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 50장은 1만원, 100장은 2만원이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거니와 곱창돌김 맛이 제대로 났다. 해녀식당 (061)552-8547. 완도소안수협 청산지점 (061)552-8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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