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적인시장 화천
강원도 춘천, 홍천에 이어 이번에는 화천이다. 산 깊고 물 맑은 동네 이름 끄트머리에는 내 천(川)자가 붙는다. 양구에서 시작한 물줄기와 평화의댐에서 오는 물줄기가 파로호에서 만나 잠시 머문다. 이내 춘천댐을 지나 강촌 아래에서 홍천강이 합류한다. 북한강이다. 화천은 깨끗한 물이 풍부한 곳이기에 산천어축제가 가능했고, 한여름에도 시원한 물과 산이 있기에 맛있는 토마토를 생산한다. 고랭지 배추는 알아도 고랭지 토마토는 잘 모른다. 토마토도 너무 더우면 잘 자라지 않는다. 텃밭에서 조금씩 키우는 것들이야 어디서든 잘 자라도 내다 팔 만한 모양새는 아니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채소 상인들이 강원도로 몰린다. 채소 대부분이 다른 지역보다 시원한 태백, 평창, 양구, 화천에서 나기 때문이다. 겨울은 반대로 제주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1년이 지나간다. 여름 채소 구경도 할 겸 화천 오일장에 갔다. 화천 오일장은 끝자리가 3, 8인 날에 열리는 삼팔장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을까?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장날에는 장터로 쓰이는 곳에 상인 몇몇만 판을 벌이고 있었다. 추적추적 며칠 내린 비의 여파인 듯싶긴 하지만 없어도 너무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에서 ‘장’은 시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날은 장사지내는 날을 의미한다. 한글학회 속담 풀이를 찾아보니 그리 해석이 되어 있었다. ‘가는’ 또한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곡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장날이 어떤 의미든 계획했던 일이 틀어졌을 때 쓰는 것은 맞다. 썰렁한 장터를 보니 절로 곡소리가 나왔다. 오일장 취재를 하러 갔지만 아무것도 없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작은 장이라도 한 바퀴 돌면 그래도 15~20분 정도 걸렸다. 서른 번 넘게 간 오일장 중에서 가장 작았던 양구도 이러지는 않았다. 장터 구경에 1분이 채 안 걸렸다. 화천 유동 인구도 적거니와 지역에서 생산하는 여름 작물도 이제 시작하는 시기라 채소전에는 외지 것만 잔뜩 있었다. 그나마 오일장이 상설시장을 끼고 열리는 덕에 상설시장 구경으로 대신했다.
화천을 대표하는 음식은 산천어. 하지만 민물이든 바다든 붉은 생선을 잘 안 먹는다. 한겨울 방어도, 참치도 어쩌다 먹을 뿐 찾아 먹지는 않는다. 그러니 화천 갔다고 제철도 아닌 산천어를 한여름에 찾아 먹을 일은 더더욱 없다. 산천어를 빼면 화천을 대표하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싶어 아무리 떠올려 봐도 딱히 없다. 토마토축제를 열 정도면 토마토로 만든 음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축제는 축제일 뿐. 토마토 속 금반지만 찾고 축제로만 끝낸다. 그래도 산 깊은 강원도인지라 콩 음식을 골랐다. 여름이니 콩국수? 아니다. 콩탕을 골랐다. 비 온 뒤 서늘한 까닭도 있겠지만 간 콩을 사골 국물에 담백하게 끓여낸 고소한 맛 때문에 선택했다. 콩탕은 그냥 먹어도 된다. 두부 만들고 남은 비지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반대로 비지를 걸러내고 단백질만으로 끓인 순두부하고도 다른 맛이다. 버려졌던 두 맛이 합쳐진 맛으로 고소함의 여운이 묵직하고 길다. 여기에 막장으로 만든 짭조름한 쌈장을 곁들여 비비면 밥 한 공기 ‘순삭’이다. 솥 (033)442-2856
춘천에서 화천으로 들어오는 길은 세 갈래다. 춘천호를 끼고 오는 원래길, 춘천 신북읍에서 신작로 따라 들어오는 길, 양구 방향에서 간동면으로 해서 오는 길이 있다. 원래 길은 돌고 돌아오는 길이지만 길가 경치는 셋 중에서 제일 낫다. 구불구불한 길 따라 들어오면 아주 작은 회전 교차로가 있다. 교차로에서 터미널로 진입하면 곰탕집 간판이 먼저 반긴다. 외지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곰탕이다.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들어갔다. 새벽 5시, 서울에서 출발해 화천에 도착하니 오전 7시. 비는 끝없이 내리고 기온은 19도. 생각 없이 들어가서 특곰탕을 주문했지만 나온 것은 저렴한 소머리곰탕이었다. 물릴까 하다 그냥 먹었다. 오호, 괜찮다. 소머리곰탕이라는 게 핏물 제대로 빼지 않고 육골 가루로 진한 국물만 내세우는 곳이 많다. 이 집은 국물 맛이 깔끔하다. 곰탕 안의 고기도 소머리 특유의 쫄깃함과 구수함만 있었다. 그냥 들어갔다가 나올 때 잘 먹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추워서, 배고파서 맛있게 먹은 것이 아니다. 국물이 참 끝내줬다. 황소머리곰탕 (033)441-1603
가는 날이 장날이 장터만 국한된 건 아녔다. 파로호 지나 화천 간동면에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막국수 먹고 집에 가면서 감자빵과 커피 한잔 사 들고 가는 일정을 짰었다. 일정 짤 때 사전에 정보를 꼼꼼히 모아야 하는데 대충하면 항상 사달이 난다. 장날은 13일 월요일이었고 식당은 매주 월요일이 휴무다. 문 닫은 식당 앞에서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 우왕좌왕하다가 어죽 한 그릇 먹고 감자빵 사러 소양강댐 앞으로 갔다. 역시나 꼬일 때는 계속 꼬인다. 내 앞, 앞에서 감자빵이 다 팔렸다. 미련을 두면 안 되는 법, 그날은 바로 철수하고 며칠 뒤 막국수 한 그릇 하러 화천에 다시 갔다. 집에서 160㎞ 떨어진 곳으로 말이다. 가면서 이게 맞나 생각했지만, 맞는 듯싶었다. 주문한 막국수와 감자전을 받고 보니 잘 온 듯싶다. 김가루와 붉은 양념으로 범벅된 막국수 모양새가 아닌, 단아하게 똬리를 튼 메밀 순면의 자태가 고왔다. 동치미와 사골 육수로 만든 국물은 탄력이 있는 듯하면서도 툭툭 끊기는 면과 조화로웠다. 면의 탄력이 좋기에 전분 함량이 20% 정도 되는 듯싶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가끔 반죽이 잘된 날이 그렇다고 한다. 다시 160㎞를 돌아오는 길, 물론 아침 일찍이라 감자빵도 샀다. 귀갓길, 고속도로 위를 지나며 곰곰이 생각했다. 지난 월요일 막국수를 못 먹게 한 것은 반죽이 잘된 날 먹으라는 신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잠시였다. 꽉 막힌 도로와 마주하는 순간 바로 사라졌다. 유촌식당 (033)442-5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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