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넣자_조미김가루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으로 출장을 간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출장이 잦아 3개월 동안 다닌 거리가 13000km. 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고 다른 곳이 고장 나 8월 초에 동네 카센타에 갔더니 오일을 또 갈아야 한다고 해서 참 많이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출장 다니다 보면 혼밥이 익숙하다. 찌개, 비빔밥, 중식, 분식 등 혼자 먹기 편한 메뉴 중에서 고른다. 고르는 메뉴 중에서 특별한 요청을 하는 메뉴들이 있다. 육회비빔밥, 회덮밥, 막국수 세 가지를 주문할 때는 김가루빼달라고 한다. 주문 할 때 까먹으면 음식에 든 김가루를 젓가락으로 일일이 빼낸다. 김가루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김가루가 모든 재료의 맛을 지우기 때문이다.

김 자체도 향이 강한 재료다. 강한 김 향을 덮는 향신 참기름까지 더해지면 김가루는 재료가 아닌 다른 재료의 맛과 향을 없애는 지우개가 된다. 김가루가 들어가는 순간 모양은 달라도 맛은 하나가 된다. 김 맛 나는 막국수, 김 맛 나는 육회비빔밥, 김 맛 나는 회덮밥으로 말이다.
열을 한 번이라도 받은 지방 성분은 빛과 산소에 약하다. 빛과 산소를 만나면 기름은 빠르게 산패한다. 즉 고소한 내가 사라지면서 찌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김가루는 김에 기름을 바르고, 굽고, 잘라 큰 용량으로 포장한다. 대용량 김가루 포장의 맨 밑은 기름 범벅이다.  습도가 높은 여름철의 김가루는 더 세심할 관리가 필요하지만 쉽게 상하지 않는 재료라 계절이 다르다 해서 특별 관리하지 않는다.

유명한 막국수 식당의 기사나 글을 보다가 저주받은 내 입맛을 원망했었다. 기사에는 비빔 막국수를 먹으면서 구수한 메밀향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막국수를 주문하면 면 위에 비빔 양념, 그리고 수북한 김가루가 올려져 나온다. 수저통 옆에는 참기름이라 쓰여 있는 통이 있다. 열에 아홉은 김가루에 바른 기름과 같은 향신 참기름이다. 그것까지 뿌려 비빈 것을 먹으면서 여리고 여린 메밀 향을 감지해 내지 못하는 무딘 미각에 대한 원망이다. 물론 농담이지만 김가루를 식탁 위에 놓인 겨자나 식초처럼 취향 것으로 맡기지 않은 주인장을 향해 원망은 했다.
김가루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맛이 약한 맨밥에 김가루 무쳐 만든 주먹밥, 남은 양념에 김가루 넣고 볶아 먹는 밥 등은 김가루가 있어야 할 자리. 김가루를 싫어하지 않는다. 있을 자리에 있으면 좋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김가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김가루가 들어가야 비로소 맛의 만족도가 최상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맛이라는 게 개인적 취향이 강한 법. 아무리 맛있는 재료라도 오남용이 되면 식재료로서 가치는 사라진다. 애써 만든 음식이 저렴해 양껏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쓰는 김가루에 평가 절하가 된다면 준비한 수고가 사라진다.

몇 해 전, 전남의 유명한 육회 거리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육회 비빔밥을 주문하니 김가루가 가득했다. 젓가락으로 걷어내도 끝이 없이 나왔다. 음식 이름이 육회 비빔밥이 아닌 김가루 비빔밥으로 바꿔야 할 정도였다. 김가루가 아주 조금 있었다면 양념이나 육회의 맛으로 봐서 최상의 비빔밥이었을 것이었지만 김가루 범벅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재료도 오남용하는 순간 맛의 균형이 깨진다. 김가루의 특성을 고려해 사용한다면 앞서 이야기한 볶음밥을 위한 맛있는 재료가 된다. 하지만 잘 못 사용하는 순간 육회 비빔밥처럼 음식을 망친다. 중국을 거쳐 인도, 아프리카산까지 들어 온 참깨도 김가루와 비슷하다. 너무 많이 쓴다. 좋은 것도 정도 것이다.

댓글

  1. 저도 공감, 김가루는 적당량 넣는것이 가장 좋습니다. 음식이 맛이 없을때는 김가루로 맛을 가리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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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래도 나는 김이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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