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傷(식상)방지식(食)상(想)3

먹을 땐 안 건드리기

어른이 골라 먹으면 개취(개인 취향 ), 아이가 골라 먹으면 편식이라 한다. 어른이야 살아오면서 호불호에 대한 경험이 쌓였기에 ‘개취’라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들은 삶이 짧은 탓에 경험이 부족하거니와 아이들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고루 먹어야 키가 큰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세 식구인 우리집은 밥은 내가 한다. 결혼할 때부터 약속이었다. 밥 때가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주로 차린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은 어른들도 좋아한다. 향이나 식감이 특이한것 보다는 무난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기 중에서 돼지고기만 보더라도 비계 많은 부위보다는 아이들은 살코기 부위를 좋아한다. 
아이 위주로 상을 차리지만 새로운 식재료로 만든 반찬이 있으면 맛은 보게 한다. 선입견만으로 새로운 반찬을 안 먹는 것은 못 하게 한다. 맛을 보고 입에 맞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편식하는 버릇를 키운다고 말한다. 뭐 보기 나름이다. 강요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생각해보면 아버지나 어머니나 밥상머리에서 많은 잔소리를 하셨다. “골고루 먹어라” “공부는 왜 안하냐” 등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었다. 어른이 되면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자라면서 했던 수많은 다짐 중 하나를 지키고 있다. 다들 잔소리 들으면서 속으로 이런 다짐들 하지 않았을까 싶다. 

딸아이 윤희는 채소를 거의 안 먹는다. 다행히 채소 중에서 상추와 오이는 잘 먹는다. 고기 구울 때 다른 채소 안 산다. 오이와 상추만 있으면 쌈 싸서 잘먹는다. 굳이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에게 쓸데없이 다른 것을 권하거나 잔소리로 식사 자리를 망치지 않는다. 또 윤희는 해산물은 거의 안 먹는다. 조개류, 새우, 게 종류는 기겁할 정도다. 기겁하는 이유를 물으니 답은 역하다는 이유다. 잡은 지 오래 되어 비린내가 심한 것이 아니였음에도 해산물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싫어했다. 필자도 해산물 중에서 멍게, 해삼, 성게, 개불은 잘 안 먹는다. 굴도 그렇다. 이삼십 대에 잘 먹지 않았던 조개는 그나마 잘 먹는다. 조개류 중에서 또 소라 종류는 싫어한다. 여전히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다. 입맛에 따라 골라 먹는다. 골라 먹는 것, 골고루 먹는 것 모두 정상이다. 모든 것이 맛있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차이일 뿐이다. 윤희가 가끔 묻는다.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 아빠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다만 나중에 반찬이 안주가 되는 나이가 되면 조금씩 바껴.” 순댓국을 대학교 입학해서 처음으로 먹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순대는 부평시장 포장마차나 순대 골목에서 순대만 소금 찍어 먹는 것으로 알았다. 처음 본 순댓국은 낯설었다. 순대 먹을 때 나오는 내장을 먹지 않았다. 오로지 순대만 먹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꼬릿한 냄새 풍기는 국물에 빠져 있는 내장이나 머릿고기는 당연히 안 먹었다. 시간이 쌓이고 계절이 바뀌면서 마신 소주의 양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낯설었던 순댓국은 친숙한 안주나 해장국이 되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기에 주말이면 부평에 갔다. 병문안을 마치고 나면 ‘평리단’길이라 불리는 시내와 이웃한 시장을 구경 삼아 다녔다. 어느날이었다. 친구들하고 밥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순댓국이 주제가 됐다. 친구들이 먹자고 했는데 자기 때문에 못 갔다는 이야기다. 인생은 타이밍!.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끼를 던졌다. “아빠랑 먹어 볼래?” “콜” 부평시장에는 예전에는 순대 곡목이 있었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꽤 몰려 있는 식당에 들어섰다. 어른들이 낀 온 테이블은 쌓인 소주병에 비례에 목소리가 크고, 가족끼리 온 곳은 조근조근 이야기와 함께 순댓국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윤희한테 선택을 하게끔 했다. “순대와 고기, 내장 포함? 아님 순대만?” “처음이니 순대만” 반찬이 깔리고 순댓국 먹는 일반적인 순서를 알려줬다. 우선은 팔팔 끓고 있는 뚝배기가 조금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간을 보고, 매운 양념을 넣은 다음, 새우젓 넣고, 소금 넣고 등등 일련의 순서를 알려줬다. 물론 새우 싫어하는 아이가 새우젓을 넣을 일이 없겠지만 상식 차원에서 알렸줬다. 사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궁합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그것은 새우젓이 익지 않았을 때나 궁합이 맞는다. 새우젓이 익는 순간 궁합은 맞지 않는다. 새우젓에 많은 소화효소도 같이 익기에 효소로서 능력은 사라진다. 다만 새우젓의 감칠맛은 남았기에 맛의 차원에서 새우젓을 넣는 거지 소화 잘 되라고 넣는 것은 아니다. 
순댓국을 처음 먹은 윤희 반응은 쿨했다. 나쁘지 않지만 굳이 찾아 먹을 맛은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먹었으면 된 거고, 다음을 기대할 수 있으면 더 된 거다. 윤희랑 어디를 갔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하나 더 늘었으면 된 거다. 윤희랑 근래에 제주에 놀러 갔었다. 출장길에 동행이었다. 일을 보고 제주에 많은 고기국수를 먹자고 했다. 음식 설명할 때 순댓국 국물에 밥대신 국수를 넣은 것이 다를 뿐이라 설명하니 바로 수긍했다. 국수 맛을 본 윤희의 반응은 예상대로 순댓국과 같았다. 먹을 수는 있어도 찾아 먹지는 않겠다는 반응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중학교 때 먹지 않았던 순댓국과 고기 국수를 먹었다면 2년 뒤 성인이 되면 아마도 머릿고기에 맞술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먹는 거로 잔소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에둘러 길게 썼다. 아이든, 어른이든 입맛대로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먹을 땐 건드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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